안 선 재 (서강대학교)
트리스탄과 이졸테(Tristan and Iseult), 랜슬롯과 귀느비어(Lancelot and Guinevere), 이니어스와 디도(Aeneas and Dido),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Troilus and Criseyde), 단테와 베아트리체(Dante and Beatrice), 페트라르카와 로라(Petrarch and Laura)... 남자와 여자의 격렬한 사랑은 유럽문학에서 하나의 중요한 주제이다. 위에 언급된 이름들이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람들과 오직 상상의 허구 속에서만 존재해 온 사람들간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다. 이 논문은 12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는 고 중세시대(High Middle Age) 동안 사랑을 다룬 문학적 묘사의 발달을 추적할 것이다. 근대 유럽의 연애 문학은 권력과 압제, 동일성과 차이성에 대한 정교한 서정시와 허구적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후기에 이르면서 개인적 경험에 관해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대개가 남성 연인이 중심인물이었다. 대다수의 경우 여성은 자신이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많은 작품에서 처음의 초점은 남성의 정신적 갈등에 맞추어진다. 찾고자 하는 이상적 사랑이 늘 발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적 사랑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 대해 동일하게 격렬한 감정을 경험하는 상태이다. 일단 남성이 그의 감정을 표현하면 여성이 느끼는 갈등의 중심은 그녀가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맞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사회는 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성과 남성―문학은 그들을 위해 쓰여졌다―이 대체로 정치·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지배 계급에 속하고, 그 때문에 그들의 깨지기 쉬운 평판을 염려하기 때문에 현존한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은 비밀을 요구하는 법이다. 연인들은 격렬하면서도 상충하는 개인적 감정의 세계에 둘러싸여 고립된 자신들을 발견한다. 낭만적 사랑의 이런 면이 서구의 개인주의 발달에 부분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남부 프랑스에서는 몇몇 시인들이 여자다움의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하면서 연애 문학 장르가 시작되었다. 뒤이은 세기에 걸쳐 전 유럽국가의 작가들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부는 연애(戀愛)시를 썼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허구적 이야기를 썼다. 기사, 귀부인, 사랑에 관한 허구적 이야기들을 주로 '로맨스'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랑이 로맨스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며, 격렬하고 사회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사랑의 형태는 "낭만적 사랑"으로 불리게 되었다.
1100년경, 길헴 9세(Guilhem IX)는 남서부 프랑스에 위치한 포이티에(Poitiers)의 공작이자 애퀴텐(Aquitaine)의 군주였다. 그는 시인이면서 건장한 군인이었는데, 자신의 성적 욕망을 통제하는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길에서 만난 여인들이 어떻게 해서 아주 "비 낭만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다소 소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성적 상대가 되었는지를 묘사하는 수많은 시들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리』(Farai chansoneta nueva) 라는 새로운 시를 썼는데, 이후 유럽의 연애문학은 다른 모습을 띄게 된다.
나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리
바람기 불기 전, 얼음이 얼기 전, 비가 내리기 전.
나의 여인이 나를 시험하도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자.
오, 어떠한 갈등을 그녀가 만들지라도
나를 그녀의 구속에서 해방시키지는 못하리
차라리 나는 그녀의 노예가 되어 그녀에게 항복하리
그리하여 나의 이름을 그녀의 계약서에 쓰게 하리
내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 나를 술 취했다 여기지 말라
그녀 없이는 나는 죽은 목숨이기에 ...
길헴의 다른 시에는 '궁정풍(courtly)의 사랑'(오늘날에는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피나모스(fin'amors)라고들 부른다)을 구성하는 모든 주제들이 등장하며,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에 페트라르카주의(Petrarchanism)로 발전되었다.
이미 즐거워하며, 나는 사랑을 시작했소.
...
왜냐하면 나는 분명 인간이 보거나 들은 최고의 사람에 의해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졌기에
...
그녀의 기쁨으로 아픈 자가 나을 수 있고
그녀의 분노로 누군가는 죽을 수 있소
현명한 사람은 어린애처럼 철없어지고
아름다운 사람은 그의 아름다움이 변해지리
가장 품위 있는 자는 상스러운 이가 되고
그렇게 상스럽던 이는 품위 있는 자가 되리.
이러한 시에 등장하는 기쁨과 고통,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역할 사이의 강한 갈등과 긴장에 대해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서, 한 남자에 대한 그녀의 반응이 친절한가 잔인한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따라 그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은 이후 자비와 은혜에 관한 기독교의 종교적 언어를 풍자적으로 개작하는 중세의 사랑 종교 유희로 발전한다.
몇 년 후 음유시인 세르카몬(Cercamon)은 다가올 수세기에 걸쳐 반복될 내용의 역설적인 언어들을 시에 담는다.
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나은 것도 아닙니다.
고통도 느끼지 않지만, 분명 큰 고통입니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랑이 어찌 될지,
그 사랑을 가질 수 있을지, 언제일지.
그녀 안에 모든 연민이 있습니다.
나를 높이 들어올릴 수도, 추락시킬 수도 있는.
나는 기쁩니다, 그녀가 나를 미치게 할 때,
입을 벌린 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볼 때.
나는 기쁩니다, 그녀가 날 비웃을 때도,
내 면전에서, 내 뒤에서 날 바보라 놀릴 때도.
설사 이런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라 해도,
이런 고약함 뒤에는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기에, 아주 빠르게.
마침내 1150년에서 약 1180년 사이에 베르나르 드 벤타돈(Bernart de Ventadorn)은 이러한 시적 유희를 원숙하게 끌어올린다.
거짓 없는 신실한 믿음으로,
나는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은 한숨짓고, 내 눈은 눈물 흘립니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나는 고통받습니다.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 날 붙들고 있는데.
그 어떤 열쇠도 아닌 동정심만이 열 수 있습니다.
사랑이 날 가둬놓은 그 감옥 문을.
허나 동정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감미로운 맛으로 너무나 부드럽게.
나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슬픔으로 죽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기쁨으로 살아납니다.
고통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 고통이 어떤 기쁨보다 값지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이 이렇게 좋은데
이 고통이 끝나면 그 좋음은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놀라운 것은 시에 사용된 역설적인 용어이다. 시인은 자신의 불행을 표현하는 내용 속에 큰 기쁨까지 담아내고 있다. 사랑은 실로 놀라워서 사회적 불평등과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결혼으로 인한 좌절감마저도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위의 시들은 상대 여인의 냉정함에 대한 은근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분명 "불평"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그녀가 이 사랑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고통은 결국 여성을 남성의 의지에 항복하도록 강요하는 심리적 무기로 사용되다.
베르나르는 다른 시에서 트리스탄(Tristan)이 금발의 이졸데(Izeut la blonda)를 향한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퀴텐의 엘리노어(1122-1204)를 알 필요가 있다. 엘리노어는 길헴 9세의 손녀딸이었다. 1170년 경 포이티에(Poitiers)에 있는 그녀의 궁정으로 베르나르 드 벤타돈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녀는 15세가 되던 1137년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결혼하지만 1152년에 이혼하고, 후에 영국의 왕 헨리 2세가 되는 헨리 플랜타지넷(Henry Plantagenet)과 결혼한다. 첫 번째 결혼으로 낳은 딸들 가운데 하나인 마리(Marie)는 1159년에 샹파뉴의 백작(the Count of Champagne)과 결혼을 하고 포이티에에 있는 어머니의 궁정을 모델로 하여 트로이(Troyes)에 궁정을 짓는다. 이 두 궁정이 바로 문학과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바로 이맘때쯤 프랑스의 작가들은 켈트인의 전설을 접하게 된다. 1131년에 영국에서는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가 『영국 왕들의 역사』(Historia Regum Britanniae)를 완성한다. 이 작품을 통해 켈트인의 영웅 아서(Arthur)가 유럽에 소개된다.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아서의 왕비 귀느비어(Guinevere)는 아서를 떠나, 아서의 적인 모드레드(Mordred)와 간통을 하며 지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고대 전설과 달리 후대의 작가들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프리가 사용한 출처들은 일부분은 기록된 것이었지만, 일부분은 구전되어 오던 것이었다 (몬머스는 웨일즈와 잉글랜드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 후 브리태니(Britany)와 웨일즈(Wales)지방에서 온 이야기꾼들이 궁정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켈트의 다른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프랑스를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이야기꾼들을 통해 크레티앙 드 트로아(Chretien de Troyes)가 자료를 얻었을 것이다.
제프리의 라틴어 판 『영국 왕들의 역사』는 엘리노어의 사학자였던 로버트 웨이스에 의해 앵글로-노르만어 운문으로 번역된다. 이 『브뤼의 사랑』(Roman de Brut)는 엘리노어가 그녀의 새 왕국이 있는 잉글랜드에 막 도착했을 때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아서-귀니비에-모드레드의 비극적인 삼각관계는 빼놓을 수 없다. 웨이스의 『브뤼의 사랑』에 앞서 스태시우스의 『테바이드』가 엘리노어를 위해 『테베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안되었다. 이 작품에서 안티고네는 사랑의 위협을 깨닫고 교묘하게 그것을 피한다. 엘리노어의 궁정을 위해 쓰여진 긴 운문체 이야기 '로망스' (Romans)에서 사랑은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150년이나 그 직후에 프랑스 작가 토머스(Thomas)도 엘리노어를 위해 오랫동안 프랑스에 퍼져있던 이야기를 개작하여 『트리스탄의 사랑』을 짓는다 (토머스가 쓴 이 작품은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는데, 독일인 고트프리드 폰 슈트라스부르그가 그 작품을 재생함으로써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유럽문학에서 위대한 시들 중 하나로 잘 알려지게 된다).
『트리스탄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이야기이다. 군사 장면은 전혀 없고, 무엇보다 개인의 정열과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리스탄은 자신의 숙부이자 콘월의 왕인 마크의 신부 이졸데를 데리고 온다. 오는 도중 배에서 두 사람은 왕실의 결혼 첫날밤을 위해 준비된 '사랑의 묘약'을 우연히 마시고 절망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작품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에서는 약의 효과가 3-4년이 지나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일시적인 문제에 불과했지만, 토머스의 작품에서는 이런 행동이 죽음만이 연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평생의 열정을 잉태시킨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두 사람이 겪는 사랑의 고통에 관한 내용이다. 그들은 숲에서 한동안 숨어 지내지만 마크가 동굴 속에 잠들어 있는 그들을 발견한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에 칼이 있어 위기를 모면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도, 그렇다고 사라질 수도 없다. 고통과 이별과 재회의 숱한 세월이 흘러 마침내 그들은 죽어서 한 교회의 반대편에 각자 묻힌다. 그들의 무덤에서 식물들이 솟아올라 교회의 지붕에서 서로 얽혀 하나가 된다.
『트리스탄의 사랑』에서 사랑의 고통은 두 개의 삼각관계로 인해 일어난다. 이졸데는 마크와 결혼하지만 트리스탄을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받는다. 이 시의 뒷부분에서 트리스탄은 절망 속에서 "하얀 손을 가진" 또 다른 이졸데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를 사랑하지도, 첫 번째 이졸데를 잊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든 이들이 고통을 겪는다. 사랑은 힘있는 남성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힘도 사랑 앞에서는 완전히 쓸모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당위와 욕망간의 갈등이 행동의 중심이 된다.
1150년대 중반, 엘리노어를 위해 글을 쓰던 또 다른 시인이 버질(Virgil)의 『아이네이드』(Aeneid)를 『이니스의 사랑』으로 개작했다. 여기서는 주인공과 디도와 라비니아(Dido and Lavinia)라는 두 여자 사이의 관계가 사랑의 갈등으로 등장한다. 디도의 사랑은 결국 극단적으로 불운한 미친 사랑으로 제시된다. 트리스탄 이야기에 대한 노골적인 응답으로, 라비니아의 역할은 서로 떨어질 수 사랑을 찾는 성공적 탐색으로, 다시 말해서 트리스탄의 삼각관계와 음유시인들의 부정한 사랑에 대한 대항으로 크게 발전한다.
라비니아는 사랑은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 직후에 창문에 비친 이니스를 보고 큐피드의 화살을 맞는다. 그 후 그녀는 이니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오래도록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그녀는 사랑을 원하지만 동시에 두렵고, 두 남자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더구나 자신에 대한 이니스의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이니스에게 고백하고, 두 사람은 서로 신뢰하고 서로의 명예를 지키면서 결혼에 이르는 진실한 사랑(leal amor)을 발전시킨다.
그 후 1155년에 새 궁정역사가 베누아 드 생뜨모레는 자신이 쓴 『트로이의 이야기』(Roman de Troie)을 엘리노어에게 헌정했다. 『트로이의 이야기』는 스물 두 개의 전투와 세 개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로 된 데어즈와 딕타이스의 트로이 전쟁에 관한 라틴어 이야기를 기초로 쓰여진 3만 줄의 로맨스이다. 로맨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본이 나왔고, 지금도 서른 개의 사본이 남아 있다. 1287년에 귀도 델 콜론에 의해 라틴어 산문으로 변형되었고, 백 서른 개의 원고가 현존하며, 17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읽혀졌다. 변덕스런 브리세이를 향한 트로일러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와 비슷하게 메디아에 대한 제이슨의 사랑, 폴리세나에 대한 아킬레스의 사랑을 설정해낸 사람은 베누아였다. 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연인들 중 적어도 한 명은 죽음에 이른다.
『이니어스와 트로이』(Eneas and Troie)는 내적 성찰과 관련된 긴 문구들 속에서 오비드의 영향을 보여준다. 베누아에게 이야기의 중심은 브리세이의 심리 변화이며, 디오메데스와 그녀와의 만남은 감정의 절정에 해당한다. 독자는 디오메데스가 울고, 창백해지고, 독백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고, 그녀의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녀에게 구애하며, 결국에는 그녀를 얻게 되는 것을 본다. 브리세이는 "트로일러스에게 행복을! 이제는 더 이상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없기에, 나는 디오메데스에게 굴복하고 항복합니다. . . " 라고 말한다. 어쨌거나 트로일러스는 아직 십대 소년에 불과했으니!
음유시인들의 서정시에는 함축된 사랑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나 『트리스탄의 사랑』과 테베-브뤼-이니어스-트로이에 이르는 로맨스는 허구적 사랑의 명백한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들은 남과 여의 사랑이 가장 경이로운 것임을, 그러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임을 보여준다. 베누아가 트로일러스와 브리세이(보카치오는 그녀의 이름을 크리세이다로 바꾸었다)의 이야기를 탄생시켰을 무렵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힘에 대항하는 강한 반발이 있었다. 『트로이의 이야기』에서 여성은 귀족적이고 영웅적인 남성을 사랑의 힘으로 끌어내린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곧이어 여성을 최초로 이상화시켰던 운문도 반여성주의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베누아의 브리세이에 관한 가장 혁명적인 사항은 그녀가 트로일러스를 불타오르게 할만큼 이상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오메데스 때문에 트로일러스를 포기할 만큼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지각 있는 여성이고, 제정신이 아닌 이들은 남성들인 것이다!
현대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다섯 개의 또 다른 로맨스는 크레티앙 드 트로아라는 한 사람이 썼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마리 드 샹파뉴 밑에서 일하기 전에 엘리노어의 궁정에 있으면서 그는 새로운 고전 로맨스를 읽고 그 로맨스들이 일으킨 논쟁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크레티앙의 다섯 개의 운문체 로맨스는 매우 창의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모든 작품들이(미완성작인 『퍼시발』(Perceval)을 제외하고) 『트리스탄의 사랑』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아서왕의 배경을 가진 최초의 로맨스 『에렉과 에니드』(Erec and Enide, 1170)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위험과 시련을 나눔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과 군인의 명예가 어우러질 수 있을까, 아니면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가 그의 용맹스런 기술을 풀어놓아야 할까? 두 사람은 함께 모험에 오르고, 서로가 서로를 시험하고 서로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에렉은 에니드에게 말을 금하지만, 그녀는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명령을 어기고 에렉에게 세 번의 위험을 경고한다. 이것은 사랑의 완성(fin'amors)이라는 이상주의적 접근에 내재한 사회적 위험에 대한 반향임과 동시에, 현실적인 여성과의 사랑에 관한 연구이다. 결혼 생활에서의 배타적이고 평생에 걸친 서로의 사랑은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클리게스』(Cliges, 1176)는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게 되는 남녀 사이의 낭만적인 이야기로 시작된다. 『에렉과 에니드』에서처럼 사랑의 삼각관계는 배타적인 일대일 관계를 위해 배제된다. 그러나 2부에서는 그 부부의 아들인 클리게스가 훼니스를 사랑하고 그녀의 사랑을 받지만, 훼니스는 클리게스의 삼촌인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와의 결혼을 강요당한다.
이 삼각관계 속에서 『트리스탄의 사랑』의 주제는 배제된다. 즉 훼니스는 이졸데가 되지 않으며, 그녀가 사용한 신비의 약은 사실상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의 남편에게 성적 관계의 느낌을 준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클리게스 삼촌의 아내로 있는 동안 클리게스와의 성 관계를 거부한다. 후에 줄리엣이 사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신비의 약은 결국 훼니스의 손에 들어가고, 그녀는 죽은 척함으로써 삼각관계를 깨고 클리게스와 결합한다.
1170년대 후반에 크레티앙은 『이베인』(Yvain)과 『랜슬롯』(Lancelot)(『사자와 기사』와 『마차 위의 기사』)이라는 두 편의 더욱 환상적인 로맨스를 동시에 집필했다. 『이베인』에서는 초반 설정이 이베인이 마법의 산에 사는 기사를 죽이고 그의 미망인 로딘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삼각관계이다. 시간은 그들의 결합을 허락하지만, 이베인은 순수한 사랑을 하는 반면 여인은 하녀의 설득으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베인』의 다음 장은 여인에 대한 사랑과 남자의 공무상의 군대 활동 사이의 갈등으로 돌아간다. 이베인은 돌아올 날을 약속하고 아내를 떠나 전장으로 떠난다. 그 후 그는 약속을 잊고 여인은 그를 거부하는 전갈을 계속 보낸다. 이베인은 늘 자신을 따르는 사자를 구출하는 등의 많은 모험 끝에 전투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실수로 죽이고 만다. 그는 다시 로딘의 사랑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또 다시 로딘의 하녀의 도움으로 소원을 이루게 된다. 하녀의 교묘한 재간에 대한 신임은 아이러니한 기법을 제시하는 것 같다.
『랜슬롯』은 거대한 문학 전통의 출발점이며, 다시 한번 『트리스탄의 사랑』의 개작으로 간주될 수 있다. 크레티앙의 처음 세 편의 시에서는 아서왕의 궁정이 단순히 배경으로만 등장하지만, 『랜슬롯』에서는 중심 삼각구도가 모드레드라는 장소에서 아서왕 자신과, 그의 아내 귀느비어, 그리고 귀느비어의 연인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부여받은 랜슬롯과 관련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귀느비어를 향한 랜슬롯의 집요한 사랑, 즉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끝없는 시험과 냉혹함을 견디어내는 사랑이다. 오해와 갈등이 두 사람 모두를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만, 그 전에 귀느비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멜리건트에게 유괴 당한 후 랜슬롯을 부르게 된다. 랜슬롯은 그녀가 갇힌 방의 창살을 가르고 결국 그들은 결합한다.
시의 후반부에서 귀느비어는 랜슬롯이 기사도 최고의 업적을 이루게 하려고 그의 의지를 완전 통제하지만, 그들의 불륜에 내재한 도덕적 갈등은 크레티앙이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다른 작가에게 이 작품을 넘길 때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말로리(Malory)에 의해 각색된 13세기의 산문체 로맨스 '벌게이트'(Vulgate)에서, 아서왕과 랜슬롯의 절교와 원탁의 비극적 붕괴를 가져오는 것은 몇 년 후 아서왕이 랜슬롯과 귀느비어의 관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크레티앙이 자신의 모든 로맨스에서 탐구한 근본적인 긴장은 사회와 관계가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더욱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피할 수 없는 더 큰 책임감을 떠 안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차이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많은 경우 아직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인과 극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적극적이지만, 그의 사랑은 그를 여인의 반응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그들의 관계는 독백으로 표현되는 오랜 기간의 자기성찰을 통해 전개된다. 크레티앙은 종종 심리 소설의 아버지라 간주되곤 하지만, 토머스와 베누아가 이미 그 전에 그들의 인물들에게 내적 독백을 부여한 사례가 있었다.
1190년 경, 마리 드 샹파뉴의 또 다른 시종이던 안드레아 카펠라누가 궁정 문학과 논쟁을 성문화하며 사랑에 관한 오비드풍의 안내서, 『정직한 사랑의 기술에 관하여』(De Arte Honeste Amandi)를 썼다. 이 작품은 C. S. 루이스의 저서 『사랑의 비유』에서 다소 높이 평가되어왔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최초의 중대한 중세 탐구는 서정적이고 허구적이지, 백과사전적인 것은 아니다.
13세기에 이르러 낭만적 사랑의 가장 중요한 발전은 『장미의 로망스』(Roman de la Rose)의 두 부분간의 대조에서 볼 수 있다. 1230년경에 기욤 드 로리스가 쓴 첫 4058행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힘을 비유로 나타내고 있다. 이 미완성 작품은 40년 후 쟝 드 맹에 의해 백과사전적인 내용을 담은 17622행으로 '완성'되었다. 이 후반 작품에서의 기조는 매우 반여성주의적이다. 그 작품은 사랑이 어떤 남성에게도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지독한 위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에서 남성은 그가 추구하는 바의 비유적 목표로서 '장미를 꺾을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은 알맹이 없는 승리로 보여진다. 그 작품은 토머스와 크레티앙이 알고 있던 것, 즉 성적 결합은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던 탐구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 낭만적 사랑은 실제 삶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 일은 1283년의 어느 날 오후 세 시 플로렌스의 한 18세 청년이 두 친구를 동반하고 자신보다 몇 달 더 어린 흰옷 차림의 한 소녀를 만남으로써 일어났다. "그녀의 말할 수 없는 공손함으로... 그녀는 나를 맞았고, 그 순간 나는 천국의 모든 경계를 훔쳐본 것 같았다."
단테의 『신생』(La Vita Nuova)을 구성하는 자전적 이야기와 시들에서 숙고되는 사랑-경험은 한 여인과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로맨스와 달리, 여기서는 남자가 군인이 아니고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스스로 통제한다. 이처럼 육체적 성은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다시 여인을 본 것 자체가 남자에게 병이 된다. 그는 말도 못하고, 점차 창백해지며,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른다.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엄청난 거리는 그의 모든 욕망이(거의 좌절된다) 베아트리체가 그를 맞이하는 소리(살루트(구원을 의미한다!))를 듣는 정도이다. 이후 1290년 6월8일, 그는 그녀를 찬미하여 한 편의 시를 쓴다.
아주 오랜 시간 사랑은 나를 노예로 묶어두었습니다
그의 권력 속에서 나를 온전히 길들였습니다
처음엔 그가 참으로 무자비하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그의 힘이 내 마음속에서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게서 내 힘을 앗아가 버리고
그리하여 내 정신이 도망치려 할 때,
나의 희미한 영혼은 맥을 못 추고
나의 얼굴에선 온갖 핏기가 가십니다.
내 안에서 사랑이 그토록 힘을 발휘하기에
나의 정신이 소리지르고 헤매게 합니다.
돌진하며 나의 정신이 부릅니다
여인이여, 부디 나를 은총으로 반겨주소서.
이것은 그녀가 나를 볼 때마다 일어나고
나는 그대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초라해집니다.
단테는 "정의의 신이 성모 마리아의 깃발아래 기뻐하기 위해 이 은혜 넘치는 여인을 불렀고, 마리아의 이름이 축복 받은 베아트리체에 의해 늘 최고의 위엄으로 불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시를 썼다. 이 미완성의 시는 『신생』의 중심에 자리해 있고, 앞부분에는 단테의 사랑이 자라나는 것에 대한 시들이 있으며, 후반부에는 단테가 죽은 베아트리체가 이제는 그의 사랑을 넘어서서, 그의 순례하는 영혼을 천국의 비전이 있는 새 삶으로 이끄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시들이 있다.
가장 긴 원을 만드는 하늘을 넘어
내 마음에서 터지는 한숨을 지나,
그 슬픈 사랑이 주는 빠른 깨달음이
슬픈 사랑을 계속 끌어올리는구나.
그 사랑이 원하는 곳까지 와보니
위엄 속에 자리한 한 여인이 보이도다
그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여인의 광채를 통해
순례자 영혼이 그녀를 응시하도다.
단테에 이르러 남녀의 관계는 욕망의 목표로서의 성적 소유를 배제함으로써 급진적으로 변형된다. 그 대신 연인의 모습이야말로 '살아있는 절대적 미'의 플라톤적 묵상의 형태, 곧 신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단테에게 행동하는 삶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며, 결국엔 자신이 『신생』의 끝에서 약속했던 바를 이루어내고 다시 베아트리체에 관한 글을 썼다. 베아트리체는 『신곡』에서 천국의 고지로 향하는 그의 안내자이고, 마침내 그녀는 물러나며, 단테는 그 여인, 즉 눈부시게 빛나는 성모 마리아와 대면하게 된다. 비극적 좌절과 파멸적 정욕의 시로서 시작한 것이 단테에서는 영원의 삶을 향한 길이 된 것이다.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유사성은 너무도 현저해서 많은 비평가들이 초창기부터 페트라르카의 로라가 과연 존재했는지를 의심해왔다. 그러나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가장 절친하고도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유일하게 기록했던 버질의 원고에서 로라에 관한 매우 자세한 정보를 이렇게 썼다. "로라는... 내 젊은 날, 1327년 4월의 여섯째 날 아침, 아비뇽의 성클레어 성당에서 처음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같은 도시에서 역시 4월의 여섯째 날 똑같은 시각에, 그러나 1348년에, 그녀의 삶을 비추던 빛은 하루의 빛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 페트라르카의 『산발적 시가』(Rime sparse)는 로라가 죽기 전에 쓰여진 267개의 연시와 그녀의 사후에 쓰여진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치는 마지막 위대한 찬가에서 절정에 달하는 백 개의 연시를 담고 있다. 두 시인 모두에게서 동일한 근본적 생각이 발견된다. 여인의 이미지에 대한 남성의 집착은 잠재적으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거부나 변형이고, 그 변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여인의 죽음과 관련된다.
『산발적 시가』에서의 주된 화제는 로라가 아니라 연인의 마음이다. 페트라르카의 시적 관심의 중심은 시인 자신이며, 그의 시속에서 여성에 대한 찬미는 결국에 독자로 하여금 남성을 탐구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남성 연인은 그녀를 일깨우는 행위 속에서 여성을 지운다.
132쪽.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지만 이것이 신에 의한 사랑이라면, 이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
이것이 선하다면, 이토록 쓰디쓴 치명적인 효력은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이 악하다면, 어찌하여 고통이 이토록 달콤하단 말인가?
(...)
이다지도 모순되는 바람 속에서 나는 너무도 경솔하게 바다에서 키도 없이 부서질 듯한
작은 배에 올라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수가 너무 무거워 나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한여름에
추위에 떨고, 겨울에 불타오른다.
1335년경 채 삼십 세가 되지 않은 지오바니 보카치오는 이미 음유시인들의 글, 『트로이의 이야기』의 프랑스어 원본과 귀도의 번역본, 안드레아 카펠라누스, 단테, 페트라르카 등을 읽고서 단테의 『속어론』(De vulgari eloquentia)에 나오는 자국어 문학을 위한 그의 프로그램을 따르기 시작한다. 1340년에는 『테세이다』에서 이탈리아어로 된 서사시를, 『필로콜로』에서 의지에 관한 연구를, 『필로스트라토』에서 사랑의 불에 관한 연구를 집필했다. 『테세이다』는 초서의 『기사 이야기』의 출처이고, 『필로스트라토』는 초서에게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의 자료를 제공했다.
보카치오는 트리스탄에 관한 이야기들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일러스에 관한 그의 로맨스를 보면 이야기가 '사랑의 관계'에 너무 편중되어서 전투적 측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멸에 이르는 전투적 행위들을 수많은 페이지에 묘사한 방대한 『트로이의 이야기』로부터 보카치오는 트로일러스-브리세이-디오메데스의 삼각관계에 관한 부분만을 선택한다. 그는 그 부분들을 '사랑의 열불'이라는 힘 아래 떨어지는 어리석음의 본보기로서 '트로일러스의 사랑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보카치오는 또한 『신생』과 『산발적 시가』도 읽었는데, 그 두 작품에서 음유시인들의 관례에 따라 쓰여진 시들의 숨은 의미로 소개되는 시인의 개인적인 사랑이야기를 발견한다. 따라서 보카치오가 붙인 그리스어 제목 『필로스트라토』는 그에게 '사랑에 정복당하고 굴복한 남자'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트로일러스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작품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시인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 시는 '필로메나'(사랑하는 여인)에게 헌정된 것이며 '크리세이다를 열정적으로 사랑함으로써 처음에는 사랑에, 나중에는 그녀의 배반에 다시 정복당한' 트로일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카치오는 서문에서 그의 여인과 독자들에게 이렇게 알린다. "여러분들은 트로일러스가 크리세이다의 배반에 슬퍼하고 고뇌하는 것을 보는 만큼, 제 자신의 아우성, 눈물, 한숨, 그리고 괴로움을 명확히 인식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크리세이다에 관한 아름다움, 훌륭한 예절, 혹은 그 밖의 칭찬할 만한 것들을 발견하는 만큼, 그것이 여러분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임을 종종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작품(『테세이다』와 『필로콜로』는 동일한 숨은 의미를 담고 있다)을 쓴 보카치오의 목적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감정적으로 정복한 어떤 사람을 노래 속에서 나의 괴로움과 관련 짓기 위해서'였다. 그 작품은 희망 없는 사랑으로 빚어진 시인 자신의 불행의 표상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작품에서 트로이 전쟁이 실질적으로 배제되고, 서정적 문체가 두드러지며, 트로일러스의 죽음이 아주 간략하게 언급된 것이다. 보카치오는 사랑의 비극에 관해 글을 쓴 것이 아니었고, 트로일러스의 죽음은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트로일러스는 크리세이다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목숨을 끊으려 할 때와 마지막에 비극적 운명을 거부당한다. 『필로스트라토』는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인의 변덕으로 인해 행복을 상실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카치오에게 트로일러스는 이야기의 출처와 달리 부정적 표본이다. 보카치오는 여성들이란 믿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모두가 바람에 흔들리는 잎처럼 변덕스럽고 쉽게 변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리세이다가 용서되지는 않는다.
보카치오는 이야기의 초점을 여성의 배반으로부터 그로 인해 생기는 격렬한 고통으로 전환시킨다. 원전에서는 디오메네스가 시 전체에 살아 있지만, 보카치오에서는 디오메데스가 이별과 함께 소개되고 트로일러스에게 영향을 미치는 멧돼지의 꿈에 등장할 뿐이다.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는 크리세이다의 약속처럼, 이 꿈과 트로일러스가 크리세이다의 배반을 확신하게 되는 보석은 모두 보카치오의 창작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출처에서 브리세이를 향한 디오메네스의 사랑을 그린 첫 부분을 트로일러스의 자기 분석, 느린 구애, 고통, 지조와 인내로 전환시키고 있다.
초서의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로 옮겨가 보면 초서가 이 이야기에 무엇을 덧붙였는지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초서는 시를 더욱 서정적으로 만들면서 심리적이고 문학적인 요소들을 심화시켰다. 또한 보카치오가 서문에서 소개했던 사적인 연애 사건에 관한 언급을 제거했다. 이것은 초서에서 트로일러스가 겪는 불행이 그토록 강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이야기는 깊은 모호성, 즉 트로일러스에 대한 평가가 훨씬 줄어들고 상승과 하락의 양식을 지닌,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으로 돌아가는 '비극'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초서의 작품에서 운명은 보카치오에서보다 더욱 강조되고 있다. 초서 작품의 초반에서 트로일러스의 행복에 대한 '상승과 하락'의 윤곽은 이 로맨스의 초점이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지 않고 내적이고 사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초서가 직접 화법의 전개를 통해 자신의 작품에 부여한 이 '극적인' 어조는, 오비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는 내성적 화법일 뿐 아니라 세네카의 영향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지막의 "가거라, 나의 작은 비극이여"는 초서가 영어로 된 새로운 내용, 즉 최초의 낭만적 사랑 이야기 창조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보카치오와 초서 모두 초기 서정시인들의 작품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작품의 서정적 특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트로일러스는 크리세이드가 그리스 전장으로 떠난 후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대목에서 초서는 보카치오의 표현을 거의 그대로 번역한다. '나의 슬픈 눈이여' (7권, st. 60) '나의 두 눈이여, 내가 바라보는 것이 헛되도다...' (5권. 197). 그러나 초서는 이 표현이 단테의 『신생(31장)』에 나오는 서정시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 초서는 똑같은 일을, 이번에는 독자적으로 하게 된다.
보카치오가 하나의 노래만을 언급한 1권 400행에서 초서는 트로일러스가 사랑의 모순적인 힘 앞에서 내적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랫말을 넣는다.
사랑이 아니라면, 오 신이시여, 이 느낌은 대체 무엇입니까?
사랑이라면, 그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사랑이 선하다면, 제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
오, 이 신비한 병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추위에 덥고, 더위에 추우니, 저는 죽어갑니다.
본문에 암시되는 바는 없지만, 이것은 앞에서 인용되었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가 최초로 영어로 번역된 것이다. 초서 시대의 독자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노래에 의해 우리는 로라를 향한 페트라르카의 사랑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 노래는 트로일러스가 내딛는 사랑의 모험에 아이러니컬한 빛을 한층 강화시키고 발산시키게 한다.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와 초서의 『트로일러스』와 「기사의 이야기」는 사랑, 고통, 운명에 관해 이야기했던 영국의 모든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 특히 셰익스피어에 의해 주요 자료들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초서가 트로일러스의 이야기를 다루는 법과 「기사의 이야기」의 어조를 보면, 여성에 대해 그토록 야단법석을 부리는 것이 어딘지 낯설고 우스꽝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에 와서야 비로소 영국인들은 낭만적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러니나 망설임 없이 단언하는 문학 작품을 낳을 수 있었다. 그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죽을 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폭풍우』(Tempest)에서는 구원과 사회 평화의 열쇠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놀랄 것도 없이, 로맨스는 셰익스피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던가!
<참고문헌>
Troilus and Criseyde: 'The Book of Troilus' by Geoffrey Chaucer edited by B.A.Windeatt. Longman, London, 1984.
W. R. J. Barron. English Medieval Romance. Longman Literature in English Series, London, 1987.
The European Tragedy of Troilus. ed. Piero Boitani. Clarendon Press, Oxford, 1989.
Chretien de Troyes. Arthurian Romances. Translated by W.W.Kiber and C.W.Carroll. Penguin Classics, London, 1991.
Lyrics of the Troubadours and Trouveres: An Anthology and a History, translations and introductions. By Frederick Goldin. Anchor Book, New York, 1973.
Dante: La Vita Nuova. Translated by Mark Musa. Indiana UP, 1957.
Petrarch's Lyric Poems: The Rime sparse and Other Lyrics. Translated and edited by Robert M. Durling. Harvard Up, 1976.
번역 곽 영미